도자기의 분류
  글쓴이 : 방산자기박…     날짜 : 06-11-26 11:03     조회 : 2724    
토기
인류가 처음 사용한 그릇으로 유약을 바르기도, 바르지 않기도 하며 500℃에서 1,100℃에서 번조되어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초까지 사용하였다. 선사시대의 토기를 거쳐 신라토기(新羅土器), 가야토기(伽倻土器), 고려토기(高麗土器)까지 청동기와 병행하여 발전하였고, 신라와 가야토기는 아주 특징적인 모양을 갖는다. 특히 집, 동물 등 여러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을 상형토기(象形土器)라 한다. 과장된 표현, 우스운 형태의 동물과 사람의 모습,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대담한 성적(性的)표현,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상상력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도기
태도의 빛깔은 백색이고 소성온도는 섭씨 1100도에서 1200도이다. 도기에는 연질 도기, 경질도기, 반자기질 도기가 있는데 이들의 흡수율은 20 퍼센트에서 1퍼센트로서 아주 다양하다. 도기 제품에는 고급식기류, 내장용 타일, 위생도기, 장식용품이 있다. 도기는 18세기 중엽에 영국의 웨지우드가 개발하였다. 도기는 토기에 견주어 기계적인 강도가 크며 유약을 바르고 있고 태도의 조정이 용이하고 소성 온도가 자기보다 낮아 제품제작이 쉽다.

석기
석기는 섭씨 1200도부터 1300도에서 소성되어 태도가 유리질화되어 흡수율이 0.5 퍼센트를 밑돌고 반투명한 것도 있다. 태토는 빛깔은 백색이다. 자기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들은 중국 당나라 때부터 만든 자기, 18 세기 초에 독일의 마이센에서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한 유럽 자기, 영국의 스태포드셔에서 죠지아 스포드가 개발한 골회 자기 같은 특수자기들이다. 골회 자기(본 차이나, bone china)는 태토에 반투명성과 강도를 주기 위하여 소의 뼈를 태워서 넣는데, 이렇게 뼈(bone)를 넣었고 자기는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그 이름이 본 차이나가 되었다. 자기는 일반 식기, 외장타일, 고압용 전기 제품, 이화학용 기기, 고급 장식품으르 만드는데 쓴다. 또 자연치와 색, 광택, 투광도가 비슷한 도치도 자기로 만든다.
자기는 토기, 도기, 석기보다는 기계적인 강도와 내열성이 좋지만 대형기물에서 소성 중에 구부러짐과 뒤틀림 현상이 일어나기 쉽고 성형할 때에는 태토가 점력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자기질 태토를 가지고 큰 도자 조형을 제작하기는 쉽지 않다.

자기
주로 1,300도 이상에서 구워지는 그릇들을 자기라고 부르며 우리들이 대부분 사용하는 식기들이 여기에 속한다.

 

고려청자
청자는 삼국시대에 만들어 졌는데  신앙적인 의미로 지니던 옥(玉)이 매우 비싸서 대신 흙으로 만들어보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4C에서 6C경의 고분에서 왕실의 옥기(玉器)로써 수입하여 사용한 것으로 중국의 청자가 발견되었다.  9C경 중국의 호족(濠族)들에게 널리 퍼진 불교의 선종(禪宗)이 청자를 찻잔으로 사용하며 실용화되기 시작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을 다녀온 선승(禪僧)들을 통하여 중국의 찻잔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고려 초 청자를 국산화하려는 노력으로 10C 후반 청자를 생산하기 시작하여, 그 후 질이 좋은 흙을 찾아 전라도 강진, 고창에서 우수한 고려청자가 생산되기 시작한다. 초기의 청자는 대체로 갈색을 띄며 무늬가 없는 깔끔하고 지적이며 단정한 순청자로 만들어지다가 12C 들어  문양이 새겨진 청자가 등장하는데, 그 문양은 불교의 영향으로 구름과 학, 불교적 선의 세계인 연못, 버드나무, 물살을 따라 노니는 오리, 고요함과 적막함을 나타낸 들국화 등이다.

조선시대 분청사기
8000여 년의 한국 도자기 역사 가운데서 약 200여 년 동안인 14세기 중엽부터 16세기 중엽까지 만들어졌던 분청사기는 한국인의 감정을 구김살 없이 보여주는 그릇이다.
분청사기라는 이름은 1940년경 미술사학자이자 미학자였던 고유섭 선생이 "분장회청사기"라고 이름을 붙인 데서 비롯하였다.
곧 분청사기는 이 분장회청사기의 약칭으로 조선시대 전기의 그릇을 대표하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분청사기는 쇠퇴해 가는 고려 상감청자로부터 출발하여 15세기 전반기에는 다양한 여려 기법을 고안, 발전시켜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15세기 후반에는 경기도 광주에 백자 중심의 관요가 성립됨에 따라 점차 쇠퇴하다가 16세기 중엽 이후 백자에 흡수됨으로써 자연 소멸된다.

조선백자
조선시대 자기의 주류(主流)를 이루며, 그 무늬를 표현하는 수법과 물감의 백자'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백자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초기의 백자는 형태가 활달하고 당당하며 이제 백자가 조선시대 도자기의 근조적인 존재로 정착하게 되었음을 알게 해 주었다.
'청화백자' 15.16세기의 초기 백자는 그 새 왕조의 힘을 과시하는 듯한 당당하고 구김새 없는 기형. 유백색 등 그 위의 백자와는 일견 구별되는 양식이다. 16세기는 초기 모 방 단계에서 17세기 완전한 한국적 단계의 과도기로서 중요하다. 임진란은 조선사를 2분하였고 도자기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변화는 분청사기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다.
종류는  순백자(純白瓷)· 청화백자· 철화백자(鐵畵白磁)· 진사백자(辰砂白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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